얼마나 갈까? 이참에 수영 제대로 배워야지...
발차기 -_-;; 하는게 서러워서라도 정복할껴...
아침시간을 다녀오니까... 그리고 너무 오랫만에 (거의 반년만에) 운동을 했는데, 그간 어떻게 지낸건지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과 그런 것들이.. 풀리는...
오늘 아침에 잠깐가진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회사가 계속 마이너스 추세를 달리고 있다. 자본금 없이 시작한 일이라서 그렇겠지만...
뭐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요즘 너무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 같아서 핸드폰이나마 기록해야 겠다는 생각에...
내 인생에 한 점을 남겨야 한다는 충동이 생겼다.
어쨋든, 그냥.. 뭐... 아저씨 같다 ㅠㅠ...
사진을 보고 있자니, 참 여러가지 것들이 생각난다.
내 어깨위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의 생계와 나의 미래.. 회사의 미래...
그리고 대표이사.
거울을 보지 않던 습관에서 벗어나 내게 지워진 것들을 각인시키도록 노력해야겠다.
하는 것마다 실수가 많다. 도대체 너무 많은 실수를 한다. 왜!!!! 왜!!! 이렇게 불완전하고 비틀대는 건가!
이미 아는 것들을 망각하고, 결심하고 다짐한 극히 이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을 뒤로한채 쓸데없는 것들을 선호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마치 사춘기 아이들보다 못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가장 필요할때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던가... 진짜 필요할 때에 그 자리를 지키는 친구가 필요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도, 환경도, 가치관도, 세계가 역동적으로 변화만을 추구한다.
하지만 가끔 변하지 않는 것, 항상 그자리에 있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극심한 외로움이면 찾아오는 그리움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
바뀌지 않았을 목소리를 기대하는 건지, 아니면 적의 없는 인사를 기대하는 것인지...
전화를 걸면, 그 기대가 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릴 까봐... 한참을 망설이고 서성거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전화를 걸었다.
어찌보면 요즘 말하는 센스나 자기 관심이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를 한결같은 통화 연결음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줄이야!
사람을 보지 말라는 그 말씀을 따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아니면,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오직 그 분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세상 기준에 익숙해져버린 나와 그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에 힘을 쓰지 못한다. ( 물론 이렇게 인정해버리면, 변화란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뱉어내고, 그 다음말로 주워담는다. )
하지만, 그 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니까 내게 무엇인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거다 ( 정말 잘 주워담는다. )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이 필요한데...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는 무얼해도 안되는 것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참 한심하다.
오늘 보았던 공부의 왕도에 나오는 엘리트 학생들... 앞에선다면, 나이만 이만큼~ 먹은 노땅으로 전락해 버린 모습을 비추는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부끄고, 자신이 한심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지 않고, 사무실에 왔다.
뭔가 초조하다.
불과 어제도 그랬고, 그 하루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틀동안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울 정도로...
분명한 목표가 보임에도 움직이지 않고, 초조해 하며, 졸리고, 감기는 눈을 애써 떠가며까지 초조해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문제가 뭘까....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또 뭘까?
이 글의 내용이 뒤죽박죽은 아닐까?
또 수많은 머릿속을 스쳐가고, 피곤의 가중치만 늘려가는데.....
모르겠다.
그냥 좀 엎드려 자야겠다.
[사진작가 최민식 / 시인 조은씨가 엮어낸 감동적인 사진에세이]
|
|
인간을 사랑하라..
끝없이 연민하라..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라..
그것이 지구에서
인간들이 진화해가는 방식이니까..
|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항체’가 여기 있습니다. 50년간 인간을 주제로 삶의 진실을 파헤쳐왔던 사진작가 최민식(76)씨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행''을 껴안는 그의 넉넉한 품이 그려집니다. 최근 시인 조은씨가 최씨와 함께 펴낸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샘터)는 고단한 삶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장사하다 끌려가는 아주머니와 고구마 몇 개 얹어놓고 행상을 벌이는 아이와 어머니, 길가에 지친 몸을 기댄 부자(父子) 등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이 연이어집니다. 그 자신 또한 팔리지 않는 사진만 찍느라 줄곧 가난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네들 삶의 진실이 더욱 진하게 그의 사진에 묻어나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치열하게 움직이며 찍어낸 사진에 시인 조은씨가 간결한 글로 새로운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최씨가 195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담아온 여러 서민들의 모습과 느낌에 감동을 더해주었습니다. 과거를 보면서 힘겨운 현재를 잠시 위로 받아봅니다. 인생을 담은 노 사진작가와 한 중견시인의 질퍽한 감동의 사진에세이를 이제부터 간략하게 소개해봅니다. |
|
|
|
|
|
왜 어머니의 팔은 아이를 품어줄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어린 소녀는 힘겹게 누군가를 업고 있는 것일까요?
(1969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서 있는 어머니 젖을
누나 등에 업힌 채 물고 있는 아이의 모습.
어머니는 손에 밴 비린내 때문에 아이를 안지 못 하고 있다.)
|
|
|
|
|
거리의 어머니는 아이의 잠을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의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이 순간,
손을 내밀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1961년 부산.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이
뒤에 있는 간판과 대비된다.)
|
|
|
|
|
삶을 응시하는 자들이 키워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1976년 부산. 자갈치 시장의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자장면으로 점심식사를 대신 하고 있는 모습)
|
|
|
|
|
고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질서와
안정감이 외면하고 싶을 만큼 서글픕니다.
(1959년 부산. 한 부둣가에서
생계를 위해 찐고구마를 팔고 있는 모자의 모습은
오히려 잘 먹지 못 해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
|
|
|
|
일찍 어른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미래가 암초처럼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1957년 부산. 이 시절에는 두 소녀처럼
학교도 못 가고 가사를 돌보며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
|
|
|
|
거리의 부녀를 눈여겨보세요.
손으로 소음을 막아주고,
다리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잡아주며
아버지는 딸아이의 잠을 지켜주고 있습니다.(1963년 부산)
|
|
|
|
|
본질에서 떨어져야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빨래는 남루를 씻어버린듯 눈부시고
햇살은 명랑한 아이들처럼 골목을 뛰어다니지요.
(1963년 부산. 태극촌이라는 종교마을의 전경.
기하학적으로 보이는 이 판자촌은
당시 북한과 타지방에서 이주해온 피난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
|
|
|
|
불순함이라고는 없는 노동에 저토록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때로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1972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한 노점상 여인이
단속반에 끌려가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
|
|
|
|
|
육신의 한 부분을 미리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삶도
도무지 가벼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1985년 부산. 극장가에서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그곳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모습)
|
|
|
|
|
삶의 속도에 의해서 진창을 벗어날 때도 있고
속도 때문에 진창에 처박힐 때도 있습니다.
(1978년 부산. 역전에서 비오는 날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물이 튈까봐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
|
|
|
|
|
이토록 다른 정서적 이질감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도
아직은 우리의 정신이 여유 있기 때문이지요.
(2002년 부산. 역전의 공중전화에서
두 여인이 전화를 걸고 있지만
그 모습이 묘한 대비를 보이고 있는 장면)
|
|
|
|
|
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
(1975년 부산. 범어사에서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
|
|
|
|
|
어른들 세계로 팔을 쭉 뻗는 아이들은
언제나 밝은 것을 희망합니다.
그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열심히 빛을 향해 발돋움하겠지요.
(1980년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놀고 있던
두 소녀가 손을 번쩍 올리고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모습)
|
|
|
|
|
자신의 삶을
스스로 더 가파른 곳에 올려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라야 평지에 있는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것일까요?
(1968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짐을 기다리던 지게꾼이
사진작가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잘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
|
|
|
|
외로움과 죽음의 관념을 이겨내고
비로소 환해지는 우리의 영혼처럼...
(2004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갈매기 한 마리가 할머니 머리에 에서 잠시 앉았다.)
:

















